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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책 이야기

[책] '열한 계단' 불편한가요? 당신에게도 다음 계단이 있을 거에요.

by 파란소금 2021.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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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근무지로 발령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지대넓얕'을 읽고 팬심이 생겨 또 읽게 된 '채사장'의 저서 '열한 계단'의 서평입니다. 마블 팬들이 마블 유니버스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는 것처럼 '채사장 유니버스(?)'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깨달음은 고독에서 오는가?


이 책의 저자인 채사장은 동해시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고 합니다. 무작정 동해로 떠나와 몇 날 며칠을 감추사에서 무전 투숙하며 생각을 정리했다고 하는데.. 어릴 적 추억이 서린 장소인 '감추사'가 등장하여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열한계단'에서 계단은 저자의 '깨달음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특정한 사건이나 숙고의 시간을 통해 저자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책의 서문에는 읽을 책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1. 익숙한 책

  2. 불편한 책

 

1번은 익숙한 세계의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고 2번은 불편한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사람마다 어떤 책이 불편하고 편한지는 본인 스스로만 안다고 하며, 이 불편함을 '설렘'으로 표현합니다.

 

  "(생략)그래서 불편함은 설렌다. 어떤 책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금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존재론적 신호. 이제 기존의 세계는 해체될 것이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 더 높은 단계에서 나의 세계가 재구성될 것이다. 하나의 계단을 더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불편함을 권한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문학-> 기독교-> 불교의 순서로 의식의 확장 단계를 설명합니다. 죄와 벌을 읽고 난 후의 충격, 신약성서를 읽으면서 찾았던 안정감, 종교적 의구심의 해답을 붓다에서 찾는 과정까지. 위와 같은 깨달음의 단계가 옳다거나 맞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의식의 흐름이 저자의 사고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서술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자도 말하죠. 깨달음의 과정 중 후술 된다고 해서 그것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사람마다 깨달음의 순서는 다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마 이 순서 자체도 불편하게 읽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독자 스스로의 세계를 넓히기 위에 계속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어서 '철학'이 네 번째 계단으로 등장하고 여기서 니체가 언급됩니다저자에게 철학은 구원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세계에 빠져있던 자신을 구체적인 삶으로 이끌어 주는 매개체였습니다사실 이 서평을 쓰기까지 저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부분입니다. 저자에게 4번째 단계였던 니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몇 번째 단계가 되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니체의 주요 개념 3가지를 살펴보면, 신의 죽음, 초인, 영원회귀는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렇습니다.

 

- 구시대의 틀에서의 탈피

- 자아실현

- 삶에 대한 긍정

 

인간은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정확히 알 순 없으나 제겐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고 있으니 그것을 인식하라 라는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무작정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하는 자기 계발 서적 외침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삶을 단순히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좀 더 나은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죠. 그저 영원히 반복되는 이 순간을 좀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항상 순간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소중한 순간 사진을 찍을 때(=카메라에 찍히고 있음을 의식할 때) 멋있는 표정을 짓는다거나, 포즈를 잡는다거나 좀 더 잘 찍히게끔 노력해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니체의 철학 개념이 이러한 행동지침을 나에게 부여합니다.  이 사진, 영원히 남을 거니까, 이 순간을 좀 더 잘 간직하고 싶다면 잘해보라고... 셀피도 수백 번 찍으면 인생 샷을 하나 건지니까 무한히 반복되는 이 영원회귀의 순간에도 한 번은 번뜩이는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불편한 계단들을 밟고 넘어서 결국에는 '초월'하길 바란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책이 마무리됩니다. 객관적 사실과 증명들로 저자 본인의 주관을 풀어내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적극적으로 저자의 시각에 동조할 수도 있고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에 대한 밑밥으로 '불편한 책을 읽어라'라고 주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문학의 나의 삶에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지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저자인 채사장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일관적이어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혹자는 동어반복이라며 그의 저술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의 오랜 사유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선한 의도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준 또 다른 즐거움은 사상에 대한 탐구들이 제가 갖고 있는 의식의 흐름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가진 사고를 객관화시켜주고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라고 말해주는 듯 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네 번째 단계의 니체 철학은 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계단이 되었습니다.

 

저자가 펼치는 일련의 흐름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이 책 자체는 '교양서적'으로 훌륭합니다. 채사장의 깨달음의 계단은 철학, 종교, 사상 등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탐구된 지식들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평소에 궁금해했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개념으로 가득하고 인문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이 저자의 삶에 조금씩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이 마냥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쉬이 읽히지 않더라도 이 책에 익숙해지는 독자가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그래서 각기 다른 불편함의 세계로 발을 딛는 항해사 독자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저처럼요. 각기 올라가는 계단은 다르지만 우리 이렇게 계단을 오르고 있노라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말에 나온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끝.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을 사는 여러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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