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저는 평소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게 녹아든 책을 좋아합니다. 그 상상력을 따라가며 제 생각의 크기 또한 커지는 것 같은 희열과 재미가 있기 때문이죠.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그와는 반대로 논리적이고 현학적인 문체로 여운을 남기는 신비한 소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입니다.
1인칭 화자인 '나'는 여주인공 클로이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는 이것을 여신의 계획이라 말하며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확률인지 수식을 세워 설명합니다. 그 만남의 기쁨에 망상을 이어가는 주인공. 너드의 면모가 보이지만 이게 바로 현학적 서사의 시작입니다. 아직 이게 재밌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특이하게 다가오는 건 분명합니다.
운명적 만남 끝에 결국 연애를 시작한 주인공. 막 시작한 여느 연인들처럼 각자 그동안 구축해온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잠시 당황합니다. 그 감정을 틀린 음정으로 표현하는데요. 각자의 공상 속에서는 오케스트라 하모니는 완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북이 늦거나 플루트가 튄다거나 하면 그건 금세 티가 날 수밖에 없죠. 만약 그런 실수가 남발하는 공연을 마주한다면 괜스레 식은땀이 나지 않겠는가? 갓 시작한 연인들의 세계관의 차이가 주는 오싹함을 틀린 음정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무엇하나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이런 은유들이 재미를 더하고 한번 더 생각하게 함으로써 울림을 줍니다.
사랑에 한 껏 빠진 주인공. 이제는 클로이의 아름다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을 끌어들입니다. 아름다움에 수학적 공식이 있기에, 잡지의 모델들이 예쁘게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클로이의 얼굴에 수학적 오류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죠. ㅎㅎㅎ 하지만 '스탕달'은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클로이를 보며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은 클로이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클로이의 치아 틈은 심지어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하다는데.. 그래서 오히려 주관적 아름다움이 개입할 여지를 준다고 합니다.
이제는 사랑을 표현해 보려 합니다. 낡고 닳은 '사랑'이란 말로는 클로이에 대한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주인공. 그녀에 대한 너무나 다양하고 큰 감정이 '사랑'이란 단어를 부족하게 만들었고 식당에서 무료로 나온 마시멜로 접시를 보자 주인공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클로이를 마시멜로 한다는 것을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중략) 그때부터 사랑은, 적어도 클로이와 나에게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에서 맛있게 녹는, 지름 몇 밀리미터의 달콤하고 말캉말캉한 물체였다."
이후에도 여느 연인이 겪는 여러 가지 상황을 작가가 알고 있는 신화적 내용, 철학적 개념을 버무려 풀어나갑니다. 친밀성이라는 개념을 들어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설명하기도 하고 행복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단계를 지나 권태기에 이르기까지 저자만의 표현방식으로 서술합니다.
변심해 버린 연인 앞에서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마음을 돌려보려는 행동을 낭만적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도 하죠. 그동안 논리적이고 현학적이고 재기 넘치던 문체가 이제는 슬픔까지 자아냅니다! 논리적으로 딱딱할 것마 같은 저자의 문체가 감정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연인들의 감정 변화는 일상적이고 그렇게 특이할 것이 없는데 저자만의 개성 넘치는 문체로 감정의 울림을 이끌어 내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인공은 이제 낭만적 테러리즘과 실제의 테러리스트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테러의 핵심은 그것이 일차적으로 주의를 끌고자 계획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역시 끝까지 재기 넘치는 문장입니다. 이런 면 때문에 책의 후반부까지 긴장의 끊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클로이와 주인공은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이미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자의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 그 사랑의 묘사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그저 그것이 궁금할 뿐^^
*
끝.
이 책을 읽으며 독서의 충분한 재미를 느꼈지만 저도 작가가 의도한 유머 중 절반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좀 더 온전히 그 재미를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며~ 소설인지 철학 에세이인지 헷갈리는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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